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단상

우리의 민족복장과 친구가 되면서

직선과 곡선이 한데 어우러져 화려하면서도 예술적이며 단아한 자태를 풍기는 치마와 저고리, 세계적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는 우리의 민족복장과 딱친구로 되면서 나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예순을 넘은 나이가 되였지만 민족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오늘도 나는 시집가는 기분이다. 또 연출을 마친 후에는 기념사진도 많이 남긴다. 위챗으로 친구가 보내온 수많은 사진들을 오래오래 뚫어지게 보노라니 나의 머리 속에는 우리 민족복장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라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행복했던 일들이 영화필림마냥 스쳐지나갔다.

행복했던 기억1

개혁개방 40주년 기념활동 일환으로 흑룡강성음악가협회와 해림시선전부에서 공동주최하고 해림시문화방송국과 민족종교사무국에서 주관한 ‘새해맞이 해림시조선족작곡가작품음악회’가 2018년 12월 29일 해림시교육센터에서 성대히 펼쳐졌다.

2014년에 정년퇴직한 교원으로서 나는 이런 뜻깊은 활동에 참가하게 된다니 마음이 고무풍선처럼 둥둥 뜬 기분이였고 더우기 처음으로 우리 민족복장을 입고 무대에 올라 춤 추고 노래 부를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고향의 훌륭한 선배들이 창작한 우수한 작품들을 노래로 부르고 무용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나는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우러르는 마음을 안고 무진 애를 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장고춤, 부채춤을 추었다. 퇴직 후 해림시조선족문화관 덕분에 여러가지 무용을 배우고 기교를 익혀 이렇게 처음으로 무대에 나섰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행복했던 기억 2

아, 이걸 어쩌지?며칠 후 연출은 시합이라지, 춤기교도 낮은데다 이렇게 큰 무대에는 처음이고... 정말 근심이 태산같았다. 회피할 수도 없었다.

연출을 위해 거듭되는 련습을 반복했다. 물동이를 이고 춤련습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무용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동작을 하나하나 익히고 거기에 얼굴표정, 감정까지 담아 표달해야 하니 엄청난 애를 썼다. 2019년 12월 28일 그때 우리는 목단강시조선족예술관에서 조직하는 성급목단강시 조선족 동이춤시합에 나서야 했던 것. 칠색단저고리에 초록색치마를 입고 머리에 동이를 이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였던지 관중석에서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갖은 노력을 쏟은 덕분에 우리 무용대는 금상까지 받아안았다. 그때 너무도 기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웃고 퐁퐁 뛰기까지 하면서 떠들썩했던 일들이 너무 인상적이였던지라 난 ‘물동이’라는 제목으로 시까지 써냈는데 그 행복하던 기억은 몇년이 지난 지금도 감로수마냥 나의 온몸에 흐르고 있는 듯 하다.

행복했던 기억 3

“여러분, 우리 조선족문화관에서는 강소성 무석에 가서 며칠간 있으면서 연출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였습니다. 곤난도 많아 좀 힘들겠지만 꼭 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느 아침, 문화관 박관장이 우리 대원들을 모여놓고 행사안내를 전달했다. 이때는 국경절 련휴기간이여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경사스러운 일이라 모두들 격동에 차 설레여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도 좋았고 지정된 장소에서 아름다운 우리의 민족복장을 한벌 두벌 바꿔가면서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그 마음도 하늘을 나는 심정이였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 복장은 ‘조용히 서있으면 노을이고 사뿐히 걸어가면 물결인 말쑥한 그 모습’ 자체였다. 우리의 복장과 춤이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연출이 끝나자마자 관중들은 어느 민족이냐고 물어보면서 사진을 찍자고 몰려왔는데 그 뿌듯함을 잊을 수가 없다. 민족자신감과 문화자신감이 고조로 밀려왔던 그날의 떨리던 감동을 어떤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을가!

행복했던 기억 4

2020년 7월 27일 해림시조선족문화관에서 가요창작회의를 가지게 된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문인협회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문화관에서 우리 문인협회에 가사를 쓰라는 부탁이 왔어요. 선생님 꼭...”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이나 멍해있었다.

나는 조선어문교원으로 퇴직을 했으나 가사를 써서 발표해본 적은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나는 온 몸의 창작세포를 전부 짜내며 읽고 또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다듬어 최종 ‘덕분에 행복해요’, ‘문화의 요람’이라는 제목으로 가사 창작을 완성했다. 거기에 더 행복한 일은 내가 쓴 가사가 기교있는 작곡가들에 의해 멋진 노래로 탄생될줄이야!

머리부터 얼굴화장까지 한껏 예쁘게 꾸미고서 하얀 저고리에 파아란 치마를 받쳐입고 공연배우들과 함께 다시 무대에 나섰다. 정말 온 세상을 독차지한 기분이였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고 또 영상을 찍는다고 법석이였다. 순간 작곡가 선생님들, 노래를 함께 불러준 친구분들이 고마웠고 좋은 평가를 해주신 평심 선생님들도 고마웠으며 더우기는 이런 무대를 마련해준 해림시조선족문화관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고운 민족복장을 입고 이쁘게 단장한 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일생에 있어 이러한 순간들이야말로 고맙고 행복했던 기억이 아니겠는가!

행복했던 기억5

2021년은 위대한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가장 뜻깊은 해이다. 35년 당령을 가진 나는 무한한 격동으로 차넘쳤다. 당을 노래하는 가사도 쓰고 동영상도 만들었으며 또 출근했던 해림조중당지부에서 조직하는 활동에도 참가했는가 하면 제1기 해랑강민속문화절을 맞으면서 연변위성과 해림시문화관광국이 공동으로 주최한 연변TV ‘아리랑극장’(2021년 9월 12일)프로에도 참가하게 되였다. 해림시조선족문화관 덕분에 연변가무단 김선희가수의 노래에 맞춰 우리는 이날에도 이쁜 민족복장을 입고 무대에 올라 부채춤도 추면서 행복한 날을 보냈다. 우리들의 복장과 춤선이 어찌나 이뻤던지 관중석에서는 “선녀들이야, 선녀!”라며 떠들었다.

정년퇴직한지도 어언 몇년이 지났다. 그간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입고 무대에 여러번 나섰다. 모든 날이 각기 다른 하루였으며 행복의 기억 역시 다채로왔고 오밀조밀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는 모두 곁의 고마운 분들 덕분이라 말하고 싶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충실히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입고서 아름다운 민족문화를 노래하고 전승하며 널리 자랑하는 일들로써 우리는 빛나고 즐거운 황혼인생을 기록해가고 있다.

민족복장에 대한 쪼각쪼각의 기억들은 떨기떨기 이슬 머금은 아름다운 수선화마냥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촉촉한 행복을 심어주었다…

/백정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