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는 정신적 생물이다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속에는 동일성을 기반으로 한 차이가 있다. 우리 뇌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는 편가르기를 재빠르게 한다. 이것은 우리 뇌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뇌과학은 말한다.

여러 명이 모인 가운데 각각 빨간색과 노란색 옷을 입혀서 그룹을 나눠 놓으면 그 순간부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대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한 리유는 없다. 뇌가 그냥 저절로 그렇게 한다. 굳이 ‘다윈염’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다름을 혐오하는 행태들이 이미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떤 류의 인간상을 추구하며 지향성을 갖는지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정향된 뇌를 조정할 수도 있다. 칸트는 이미 정신의 ‘자률성’이 뇌가 판단하고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그러므로 ‘나≠뇌’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의 자아는 어쩌면 뇌 세포 수만큼의 자아가 있고 그중 하나가 두드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드러나는 한두 가지의 모습이 전체를 다 말해줄 수 없음을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 한두 가지 모습으로 타자를 규정짓고 결정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나=뇌’가 되여 자연법칙에 따르는 사물이 되여버리고 정신적 생물성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포기하는 것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인간을 비물질적이면서 물질적인 존재, 즉 정신적 생물이라고 말한다. 물질적(생물)이라는 것은 사물로서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그러므로 ‘나=뇌’라고 신경중심주의가 말하려는 것은 어쩌면 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은 비물질적이며 자연법칙들은 정신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가브리엘은 반자연주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가 물질적이지는 않다고 말하며 비물질적 실재들, 례컨대 나. 의식. 자아. 의지.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가브리엘이 “나는 뇌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인 생물이라는 것과 그것에 기초를 둔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는 올바르게 사용할 때 더욱 빛이 나는 존엄한 이름이다.

/인체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