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외 1수)

권희옥

눈꽃이 하얗게 날리는

황막한 산천

아직도 추위에 떨고 있는데

매화야

너는 어찌 추운줄도 모르고

이 설한에 핀단 말이냐


애틋한 기다림이

그렇게도 급하여

따듯한 봄을 기다리지 않고

방울방울 송이송이

더 이상의 황홀함에 젖어

하얀 너울 곱게 쓰고

연분홍 미소 지으며

남이야 알든 말든

남이야 보든 말든

하얀 순진한 마음으로

신비로운 향기 가득 담아

령롱하게 활짝 피였구나


아릿다운 찬란한 모습으로

설한의 모진 추위도

몰아치는 찬 바람도

아무렇지 않는 듯

바람타고 한들거리는

가지에 앉아

동그란 미소 예쁘기도 하다

너는 하늘이 이 세상에 내려준

축복인가 선물인가

너는 자기만의 개성이 따로 있어

어엿하고 강인하게

거짓없는 진정함으로

차가운 세상 지킨다

파란 많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듯

쉼없이 속삭이고 있구나


하얀 눈 한가운데

피여있는 매화야

너도 봄을 기다리고 있느냐

연두빛 새 봄이 오면

해빛이 끓을 때

따뜻한 햇살이

너의 차가운 마음도 몸도 녹여주리


그 때가 되면

더이상 춥지 않고 고독하지 않으리

언젠가는 하얀 아쉬움이

꿈처럼 쏟아져 내리면

서러워 마라

구수한 흙냄새 풍기는

부드러운 땅이

서슴없이 꼭 안아 줄 것이다


저물어 지는 석양


나이가 드니

나이가 보인다

자욱한 세월 속에

두고 온

나의 수줍고 생기있던

청춘이


짙은 안개 헤치며

서서히 다가온다

한번 생명

한번 인생

누가 묻는다

고달프지 않냐고


두손 깊숙히

호주머니에 넣고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마음 차분해진다

일상의 조각조각들이

한데 모여

은근히 힘이 된다

고요하고 잔잔한

희열이

숨을 쉬 듯이

고여 모인다

여유로움의 자리가

펼쳐진 듯이

한줄기의 찬란한 햇살

무성한 꽃나무

새들은 재잘거린다


만나는 사람들의

한가락 친절한 미소

이렇게

평범하고 자유로운

일상의 틈새에

열정과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사소한 사연들을

겪어가며

행복 찾는다


나는 그냥

어제날에 마음으로

세월이 가르치는대로

자연이 지배하는 대로

빨간 락엽 구르는

인생의 가을 속에

조용한 나날 보낸다


잠자코 있던

령혼이

또다시

생기가 있는 듯

그윽한 향기

그려보며

남은 나날들을

구상해본다


먼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성숙의 의미를

찾아보며

열심히 다듬어갈

황혼빛에 젖은

차분한 여생

언젠가를

번연히 알면서도

심열을 다하는

인생


다음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날

없으니

못다한 사랑

속히 하거라

못다 나눈정

어서 나누거라


인연이 있어

이 세상에 왔으니

나이는

죄가 없느니라

나름대로

멋지게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