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조선족 취직관이 달라진다

해외에서는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일하다가도 국내에서는 체면 때문에 직종을 가려가며 일하던 청도조선족들의 취직관이 서서히 변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일자리가 있어 행복합니다”

두 자녀의 엄마인 리녀사(54세, 길림성 연길 출신)는 남편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고 큰 자식도 직장에 다니고 있기에 생활에 별로 부담이 없다. 부자는 아니여도 집도 있고 자가용도 있으며 대출을 갚아야 할 경제적 부담도 없다.

그런 리녀사가 마트에 출근하자 청도 조선족사회에서 이슈가 되였다.

“할 일 없이 집에서 그냥 논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취직했는데 너무 좋습니다.”

리녀사에 따르면 놀고 있을 때는 날마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으나 지금은 칼같이 출퇴근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익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쑥스러워 어쩔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젠 너무나도 당당해졌다고 했다.

한달 로임 3800원, 로임받는 재미도 있으나 그보다도 로동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고질병이던 오십견도 사라졌고 하루 내내 흐리멍텅하던 정신도 한결 맑아졌다. 일단 몇달만 해보려던 일이 벌써 1년을 넘겼다.

“도우미로 뛰고 있어요”

장녀사(52세, 흑룡강성 가목사 출신)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된다. 열심히 일하여 목돈은 벌었지만 여기저기 병을 얻었고 편안히 놀며 살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축나는 돈 앞에서 불안감은 날에 날마다 커져갔다. 그렇다고 또다시 해외에 나가 뼈빠지게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식점을 경영하는 동생이 단체손님을 받았으니 도와달라고 청했다. 할 일 없이 허송세월하던 그는 두말없이 도와나섰다. 그런데 웬걸? 동생이 한시간에 20원씩 계산하여 시급을 주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견결히 싫다고 거절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돈을 받는 데 습관이 되였습니다” 장녀사는 이젠 도우미 생활에 습관이 되여 파출부로도 뛴다고 했다.

“도우미 관련 사업도 지금 계획중입니다” 장녀사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사무실 없이 인터넷 공간에 그룹을 묶어 관리하는 형식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였다.

“선진국에 가서 일한 보람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고 들은 것이 많은 것 만큼 일 능률이 높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도우미로 뛰며 서로 돕고 어울리면서 일하고 싶다는 그녀는 아름다운 꿈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늘 로임을 탔습니다”

청도 성양구 도원거에 자리잡은 모 커피숍에서 애된 얼굴의 한 청년이 근무하고 있다. 올해 20세인 김군이다.

그의 한달 로임은 4000원, 커피숍 사장이 챙겨주는 보너스를 더하면 4500원을 받는다. 씀씀이가 헤픈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 혼자 써도 모자랄 돈이지만 김군은 ‘계획경제’로 집안을 즐겁게 해준다.

고향에 계시는 할머니에게 300원, 학교 다니는 동생에게 200원, 부모님께 1000원을 드리고 나면 나머지 3000원은 당연히 그의 몫이다.

“왜서 출국하여 돈벌이를 하지 않는가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어디에서든 돈을 착실히 벌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군은 일전 스스로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김군에 따르면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살아가는 그가 친구들의 모델이 되여 현재 많은 친구들이 서비스업종에 취직중이라고 한다.

개혁개방 이래 국내의 조선족들은 해외진출로 물질적 부를 이뤘다. 그러나 귀국 후 이들은 현실과 과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특히 해외 로임보다 몇배 적은 국내 로임에 만족할 수 없어 취직을 포기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귀국한 후 벌지는 않고 쓰기만 하는 ‘월광족’으로 전락하여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였다.

서비스 현장에 나타난 조선족, 비록 아직까지는 미비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분명 불어오고 있다.

/허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