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의 아이를 16년 의무 부양한 ‘보모할머니’

최근 호북 황석의 68세 ‘보모할머니’ 류방이 고용주의 아이를 16년간이나 의무적으로 키우고 그가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데 든든한 뒤심이 되여준 사연이 현지에서 전해지며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당시 나 홀로 미성년 자식을 셋이나 키우고 있었다. 원래 남의 집 아이를 돌보면서 용돈을 벌어 집에 보태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16년 전에 벌어진 일을 언급하던 류방은 저도 모르게 흐느꼈다.

1955년에 태여난 류방은 호북 마성사람이다. 그런데 남편이 황석에서 근무하면서 결혼 후 황석으로 오게 되였다. 세 아이를 낳은 후 1988년에 작은딸이 1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3살밖에 안된 류방은 막로동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 기간 페인트공, 가정부, 청소, 과일판매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2007년 7월의 어느날 한 가사관리회사 친구의 소개를 받고 과일가게를 하던 류방은 아이를 돌보는 보모 아르바이트를 겸하기로 했다. 한 남성이 2살 반밖에 안된 아들을 류방의 집에 데리고 와서 매달 800원을 줄 테니 류방더러 전탁으로 봐달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소걸이였다. 그런데 소걸이의 아버지가 2개월 월급만 지급한 후 련락이 끊어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비록 살림살이가 쪼들렸지만 마음씨 착한 류방은 불만을 아이에게 풀지 않고 여전히 변함없이 아이를 돌봐주었다. 그는 과일가게를 경영하면서 버는 작은 리윤으로 가정생활과 아이들의 공부에 보탰다.

“이미 50대가 되였는데 왜 자신을 이리 힘들게 하는가”라며 친척과 이웃들은 그녀에게 소걸이를 키우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할머니’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아이를 보면 류방은 힘든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남다른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 강아지들도 시간이 길어지면 감정이 생기는데 하물며 이렇게 귀여운 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어깨가 무거웠지만 류방은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텨나갔다. 그리고 사회와 학교의 도움을 받으면서 더욱 굳은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이들 가정의 어려움을 료해한 현지 교육국에서는 소걸을 집과 가까운 연호로소학교로 전학시켜주었고 해당 사회구역에서는 소걸을 위해 최저생활보장금을 신청해주었으며 명절마다 위문방문을 했다.

고향에서 대리수업을 해준 적이 있는 류방은 소걸이의 교육에도 아주 신경을 썼다. 소걸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 그녀는 매일 아침 소걸이가 집에서 반시간 동안 공부하게 한 다음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이렇게 고중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아침 자습을 시켜줬다.

소걸이가 방학이 되여 기숙사에서 돌아오면 류방은 “아이가 키가 클 나이인데 너무 담백하게 먹으면 안된다”면서 어떻게든 좋은 음식을 먹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는 평소 집에 홀로 있을 때 고기반찬을 거의 먹지 않았다. 류방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소걸은 류방의 가족과 하나로 되였다. 그는 류방의 딸과 사위를 고모와 고모부라고 불렀다.

16년간 류방의 세 자녀들은 어머니의 선량함과 선택을 깊이 리해했다. 그들은 소걸이에게 숙제도 가르쳐주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챙겨주기도 했으며 그를 위해 생활비도 내주고 려행도 데리고 갔다.

올해 대학입시 성적이 나온 후 소걸이는 소원대로 중남림업과학기술대학에 합격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을 걱정하던 류방과 그의 딸, 사위는 9월에 소걸이와 함께 학교에 가서 입학등록을 했다. 소걸이를 자기의 손주로 생각하고 키우기까지 그녀는 보통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인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