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이모네’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5학년 리소정

“소정아 저녁에 옥수수 삶았어. 따뜻할 때 먹거라.”

학교 끝나고 오는데 누군가가 불렀다. 옆집 ‘왕이모’였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 집 이웃이였다.

나는 한국에서 태여났고 학교 다닐 나이가 되여서 중국으로 오게 되였다. 엄마 고향이긴 하지만 친척도 친구도 별로 없었다. 다닐 학교에 등록하고 그 근처에 집을 잡았다.

이사 첫날 옆집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예쁘장한 왕씨성인 한족 아주머니가 “안녕! 꼬마학생이 왔구나. 환영한다. 우리 잘 지내자”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십중반쯤 되는 부부는 아이가 커서 결혼하고 둘이서 살고 계셨다.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왕이모는 우리를 엄청 반기셨다. 우리 두 집은 금방 친해졌다. 엄마도 떠난지 오래된 고향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기뻐하셨다.

겨울방학이 되면서 한국으로 가게 되였다. 한 두달 있다 금방 돌아갈줄 알았는데 그만 코로나로 귀국 날자가 연기되였다.

일년 넘게 지나 학교 개학 날을 맞춰서 나는 엄마와 언니랑 귀국하게 되였다. 왕이모는 엄마랑 수시로 위챗련락을 하면서 우리들의 안전한 귀국을 당부했다. 중국에 도착해서 3주간 호텔에서 격리를 마치고 집에서 일주일 격리를 하게 되였다. 집으로 오니 이모께서 일주일치 먹을 과일, 고기, 야채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준비해주셨다. 세심한 왕이모는 내가 심심할가봐 언니랑 놀라고 바둑도 사주셨다.

집에 도착한 첫날 저녁 이모는 퇴근하면서 문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었다.

“동생 무사히 와서 다행이다. 소정아 잘 지냈지?”

호텔에 있는 내내 완전 무장복장을 한 방역일군들의 딱딱한 업무말투만 들어오다가 귀에 익은 이모의 진심어린 반가운 말투를 들으니 너무 기뻤다.

“네 이모, 이모부 보고싶었어요.”

이튿날 똑똑 노크소리가 났다.

“꼬마아가씨들 보고싶은 책들 있으면 말해봐. 이모 퇴근하면서 사올게.”

“날씨 더운데 아이스크림 사서 문앞에 놓았어. 녹기전에 얼른 갖고 들어가.”

“이모 물만두 먹은지 오래 됐지. 따뜻할 때 얼른 먹어. 문고리에 걸어두었어.”

“이모 만두 너무 맛있어요. 우리 이모는 료리천재네요. 만두가 배추모양이예요.”

“이모는 우리한테서 코로나 옮을가봐 두렵지 않나요?”

“나는 우리 나라 방역정책을 믿어. 너희들이 건강해서 너무 좋다.”

...

우리는 문을 사이에 두고 말을 잠간씩 주고 받았다. 왕이모 덕분에 지루할 것만 같던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왕이모는 우리가 학교에 갈 수 있어서 학업이 뒤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자기일처럼 기뻐하셨다.

일곱번째 날 드디여 우리 두 집은 만났다. 예전처럼 아침저녁으로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느날 “띵동”하고 핸드폰알람이 울려서 보았더니 언니와 나에게로 훙뽀우가 각각 십원씩 들어왔다. 발신처를 보니 왕이모였다.

“이모 무슨 돈인가요? 세배돈 받을 때가 한참이나 남았는데요.”

“저번에 모아둔 교과서랑 박스를 팔아서 받은 돈이야. 학용품이랑 사서 쓰거라.”

이사 왔을 때 이모부께서 택배박스랑 광천수병이랑 책같은 것들을 버리지 말고 복도에다 같이 모아두자고 했는데 그것을 잘 처리해서 오늘 보내주신 것이였다.

“언니두 그것 얼마나 된다고 형부 더운날 시원한 맥주나 한캔 하시게 하시지.”

“아니야, 동생 이것 또한 애들한테 경제교육이 되는 것이야.”

“이모 짱!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나도 모르게 다섯살이후로부터 사라졌던 애교로 손하트를 보냈다.

나는 이런 이모가 있어서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우리 왕이모랑 오래오래 좋은 이웃으로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이모, 이모부 워아이니!”

/지도교원 장계화